개와 늑대의 시간

l’heure entre chien et loup. 개와 늑대를 구별할 수 없는 시간. 황혼 무렵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친숙한 것인지 나를 해치려는 낯선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애매한 순간.
황혼에는 색깔들이 다르게 보인다. 낮에 선명했던 것들이 부드러워지고, 단조로웠던 것들이 층위를 드러낸다. 빛과 어둠이 만나는 지점에서만 볼 수 있는 미묘한 색조들이 있다.
대학 시절 M은 말했다. “애매한 게 제일 힘들어”라고. 그때는 연애 이야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삶의 많은 것들이 그렇다.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 회색 지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말이 머무는 곳
어떤 말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날씨 이야기, 오늘 뭘 먹었는지, 어떤 영화를 봤는지. 가벼운 말들은 그렇게 흘러가곤 한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무게를 가지고 있어 받는 사람의 마음속에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때로 다른 누군가에게 직접 하지 못하는 말을 제3자에게 먼저 건넨다. 마치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하듯이. 하지만 그 봉투는 뜯어져 있었고, 그 메시지는 이미 내가 읽어버린 것이다. 말에는 마땅히 무게가 있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침묵은 그 자체로 무게가 있다.
충실한 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야생의 늑대가 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기도 하다. 친숙함과 야생성 사이에서, 충성과 독립 사이에서, 침묵과 발화 사이에서.
두 언어는 내 머릿속에서 부딪힌다. 그 사이에서 나는 번역자가 되기를 거부하기로 한다. 때로는 말하지 않음으로 메신저가 되기를 회피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이자 인류애를 몸소 실천하는 용기있는 길일 수도 있다.
가면과 바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전혀 모른다고 여겼던 것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거울을 보면 이상한 사람이 서 있다. 분명 내 얼굴인데, 내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무언가를 아는 척하고 있는 가면을 쓴 사람처럼. 그런데 그 가면을 벗으면 그 아래에도 또 다른 가면이 있을 것만 같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한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전혀 괜찮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요즘 같은 바다 꿈을 자주 꾼다. 끝이 어디인지 모를 바다 한 가운데 하늘을 보고 수면 위에 떠있다. 태양은 나의 바로 위에 타오르고 있다. 물결이 나를 이리저리 흔들지만 나는 그저 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누운 자세로 가라앉는다. 숨이 가쁘지는 않는데,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다 심해에 닿아 태양 빛이 사라져 질흙같은 어둠이 드리울 무렵에야 잠에서 깬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도 바다이다.
시간
시간은 이상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무겁고,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가볍다. 마치 모래시계 속 모래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과정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릴 때는 시간이 끈적했다. 학교 수업 시간 45분이 영원처럼 느껴졌고, 방학은 한 세기만큼 길었다. 지금은 반대다. 하루가 한 시간처럼, 한 달이 일주일처럼 스쳐간다. 아마도 시간에 대한 감각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것일지도.
가끔 시계를 보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싶다. 쫓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리듬에 맡기고 싶다. 그럴 때면 시간이 가장 가벼워지겠지. 오늘도 모래시계는 조용히 돌아간다.